툴라는 몽골의 유서 깊은 활쏘기 전통 스포츠로,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유목민의 생존 기술,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정신이 담긴 툴라는 전통 축제와 함께 이어지며 몽골 민족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문화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
활과 초원의 만남—툴라의 기원과 문화적 맥락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유목민 문화는 단순한 이동 생활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생존을 위한 기술, 공동체의 유대가 어우러진 총체적 삶의 방식이다. 이 가운데 ‘툴라(Toola)’는 몽골의 전통 활쏘기 경기로, 단순한 무술이나 스포츠를 넘어서 유목민의 철학과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 툴라는 나담(Naadam)이라는 몽골 최대의 전통 축제에서 씨름, 경마와 함께 ‘3대 전통 경기’ 중 하나로 꼽히며, 이 행사를 통해 전국 각지의 선수들이 실력을 겨룬다. 하지만 툴라는 단지 점수를 매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다. 이 경기는 몽골 유목민의 삶에서 필수적인 사냥과 방어, 생존 기술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전사적 기개와 공동체의 연대를 상징한다. 툴라의 기원은 고대 흉노 시대부터 기록되며, 칭기즈 칸의 군사 전략에서도 중심적인 요소로 기능했다. 유목민들은 이동 생활을 하면서 식량을 확보하거나 적을 방어하기 위해 활을 필수 도구로 활용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활쏘기 훈련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문화였다. 활쏘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몸의 연장’이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사물의 리듬을 읽는 감각을 길러주는 수행이었다. 오늘날의 툴라 경기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대회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경기 자체는 전통 복장, 전통 활과 화살,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진행을 원칙으로 하며, 이 모든 요소는 몽골 고유의 민족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경기장에서뿐 아니라, 훈련 과정에서도 지역 사회의 인정을 받고, 자부심을 느끼며 툴라를 계승해간다. 따라서 툴라는 단순히 활쏘기를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몽골 초원의 정신을 담은 문화 실천이자, 세대 간의 전통 계승의 통로이며,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툴라의 경기 규칙과 활의 예술성
툴라 경기는 보통 직선거리 약 60~75미터 구간에 설치된 표적에 일정 수의 화살을 발사하여 적중률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표적은 ‘수르’라고 불리는 가죽 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원기둥 형태로, 땅 위에 일정 간격으로 세워진다. 이 수르는 일정한 배열을 이루며, 화살이 정확히 맞아 넘어뜨릴 경우에만 득점으로 인정된다. 가장 큰 특징은, 참가자가 일정 거리에서 활을 쏘되, 자세와 박자, 타이밍에 있어 ‘미적 기준’이 함께 평가된다는 점이다. 몽골에서는 단지 과녁을 맞추는 기술뿐 아니라, 활을 당기는 손동작, 화살을 올리는 흐름, 발사 순간의 몸의 균형 등을 모두 예술적 요소로 본다. 이는 활쏘기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무용적 수행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툴라에서 사용하는 활은 전통 복합 활로, 나무, 뿔, 동물 힘줄 등으로 정성스럽게 제작된다. 이 활은 크기가 작고 휘어져 있으나, 강한 탄성과 긴 사거리, 정밀한 조준력을 자랑한다. 화살은 새의 깃털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며, 숙련된 장인은 선수의 신체와 습관에 맞게 활과 화살을 맞춤 제작한다. 이러한 장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선수의 혼과 정신이 담긴 예술품처럼 여겨진다. 경기의 진행은 대체로 정숙한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관중들은 함성 대신 ‘우라’ 또는 ‘하라’와 같은 전통 응원 구호를 짧게 외치며 경의를 표하고, 선수들은 매 발사마다 심호흡과 집중을 통해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툴라가 정신적 수행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문화적 요소다. 심사는 단순히 점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경기에서는 표적을 맞춘 수보다도 ‘연속성’과 ‘우아함’, ‘자연과의 리듬 일치’ 등이 우선 평가된다. 이는 활쏘기를 통한 ‘내적 수련’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몽골 철학이 반영된 규칙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툴라는 단지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개인 수양과 공동체 내 역할 수행을 위한 훈련이자 표현 방식으로 기능한다.
툴라, 몽골의 정체성과 인간성의 축
툴라는 단지 전통 스포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몽골이라는 민족 공동체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역사, 환경, 가치관, 예술적 미학을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문화 행위이다. 초원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고, 기술과 정신이 일체가 되는 툴라는 몽골인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한다. 오늘날 툴라는 단지 나담 축제의 볼거리로서가 아니라, 정체성 교육과 청소년 성장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활을 배우기 시작할 때 단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선배의 자세를 모방하고, 조상의 명예를 기억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교육적 효과는 단순히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인격 형성과 사회화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또한 툴라는 국제적으로도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몽골 정부는 툴라를 포함한 전통 스포츠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며, 활쏘기 체험 관광, 국제 교류 경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가치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몽골의 문화 자산이 세계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툴라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집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빠르고 즉각적인 결과에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툴라는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기술보다 마음가짐’이라는 철학을 일깨워준다. 이로써 툴라는 전통 스포츠를 넘어, 인간 내면의 성장과 공동체 속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이 된다. 궁극적으로 툴라는 활 한 자루로 초원의 하늘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공동체의 중심에 서는 법을 가르쳐주는 몽골 유목민의 삶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