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마치는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안데스 산맥 지역에 거주하는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 등 원주민 공동체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스포츠로, 공동체의 협력, 체력, 전략을 필요로 하는 집단 경기이다. 사냥과 농경 전통에 뿌리를 둔 이 경기는 오늘날 축제와 문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산의 숨결을 따라—사나 마치의 기원
남미 안데스 산맥을 따라 형성된 고산 지대에는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원주민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서도 케추아족(Quechua), 아이마라족(Aymara) 등의 부족은 농경과 목축, 사냥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생활 문화를 형성해왔으며, 그 일환으로 ‘사나 마치(Sana Machi)’라 불리는 전통 스포츠를 세대 간 전수해왔다. 사나 마치는 일종의 공동체 단위 경주 또는 사냥 시뮬레이션으로, 체력과 민첩성, 인내, 협동심을 동시에 요구하는 독특한 경기이다. ‘사나’는 케추아어로 ‘달리다’, ‘추격하다’는 뜻을, ‘마치’는 ‘줄지어 걷는다’ 또는 ‘함께 움직인다’는 뜻을 지닌다. 이처럼 이름 자체가 경기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사나 마치가 단순한 경쟁이 아닌 ‘공동 이동’의 개념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 경기는 여러 명이 한 줄로 연결되어 산악 지형을 돌파하거나, 특정 목표를 쫓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팀원들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핵심이기 때문에 단독 플레이보다는 전체의 협업이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사나 마치는 주로 농한기 혹은 특정 제례 의식과 연계되어 열렸다. 예를 들어 수확을 기념하거나,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 후에 진행되며, 참가자들은 전통 복장과 무늬가 그려진 천을 착용하고, 일부는 상징적인 장비를 들고 등장한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제처럼 들썩이며, 이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마을의 일체감을 강화하고 세대 간 소통을 유도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 전통 스포츠는 현대에 들어와 점차 사라질 뻔했으나, 최근에는 지역 축제나 학교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복원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페루 쿠스코(Cusco) 인근의 일부 마을에서는 사나 마치를 국가 지정 민속 경기로 등록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며, 이는 단순한 문화 보존을 넘어서 현대적인 공동체 교육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협력의 미학—사나 마치의 경기 방식
사나 마치는 기본적으로 두 개 이상의 팀이 일정 구간을 정해진 방식으로 이동하며 진행되는 형태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줄잡이 경주’로, 팀원들이 서로 끈이나 천으로 팔을 연결한 상태에서 산악지형, 초원, 개울 등을 통과하며 끝 지점에 먼저 도달하는 팀이 승리하는 구조다. 단, 단순히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수행해야 하는 과업 수행 여부와 팀워크 평가도 반영된다. 경기 전에는 마을 장로가 경기 구간과 규칙을 설명하며, 그날의 자연신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짧은 의식을 거행한다. 참가자들은 천으로 된 끈이나 로프를 이용해 손목이나 팔, 허리를 서로 연결한 후 출발점에 선다. 이때 팀원 간의 간격과 줄의 길이는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경로 변경이나 로프 해제는 실격 사유가 된다. 이동 중에는 몇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간 지점에서 돌을 쌓아 특정 구조물을 만들거나, 물을 담아 일정 거리를 이동하거나, 지정된 식물을 채취해 도착 지점으로 가져오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이는 단순한 체력 소모 이상의 전략적 협업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부분이며, 사나 마치의 깊은 교육적 의미를 보여준다. 이 경기는 보통 1~2시간에 걸쳐 진행되며, 고산 지형 특성상 경로는 가파르고 험난하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사전 훈련을 통해 체력과 협업 능력을 길러야 하며, 특히 리더의 지시를 따르고 긴장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팀에는 ‘코요(Quyo)’라고 불리는 리더가 있으며, 그는 이동의 리듬과 방향을 조절하고, 필요 시 전체 움직임을 멈추거나 다시 정렬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기 후에는 심판 겸 장로들이 경기력을 평가하고, 승패와 함께 ‘가장 협력적인 팀’, ‘가장 창의적인 전략’ 등을 별도로 시상한다. 승자 팀에게는 전통 옷감, 물통, 곡물 바구니 등이 상품으로 제공되며, 이는 실용성과 함께 명예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경기에서 벗어나 공동체 내부의 윤리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장으로 작용한다.
사나 마치가 남긴 유산과 오늘날의 의미
사나 마치는 단지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행해진 전통 경기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간의 협력, 자연에 대한 존중, 인내심과 전략,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위한 노력이라는 가치가 깃든 심오한 문화 유산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단절과 경쟁 중심 문화 속에서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현대 스포츠가 속도와 개인의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나 마치는 그 반대의 극점에 있는 전통이다. 속도보다 균형, 기술보다 협력, 승리보다 과정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이 게임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의미를 갖고 참여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따라서 교육적, 사회적, 심리적 효과가 뛰어난 체험 콘텐츠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이 가능하다. 특히 사나 마치는 세대 간 전승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경기를 통해 아이들은 어른들의 협력 방식을 배우고, 리더십을 실전에서 체험하며,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닌 ‘살아 있는 교육’의 한 형태이며, 전통 사회가 후세대를 길러내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 페루나 볼리비아의 지역 축제에서는 사나 마치를 재현한 문화 프로그램이 다수 운영되며, 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경기와 의식, 공동체의 응원과 축제가 어우러진 사나 마치는 전통을 넘어 현대적 감동을 주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국 사나 마치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협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기다려주고 있는가? 고산의 숨결을 따라 이어진 이 전통 게임은 인간다움의 본질과 공동체의 이상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