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톤 경기는 폴리네시아 지역의 해양 공동체에서 유래한 전통 수중 스포츠로, 얕은 바닷속에서 팀 단위로 물체를 운반하며 진행되는 경기이다. 협동과 호흡 조절, 수중 기동성이 중요한 이 경기는 고대 해양 생존 기술과 공동체 중심 문화를 반영한 독특한 전통 놀이로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
바다 위가 아닌 바다 속에서 시작된 경기, 뽀로톤
태평양의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폴리네시아 지역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타히티, 사모아, 통가, 하와이 등으로 대표되는 이 문화권은 단순한 섬 문화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바다를 항해하며 생존한 ‘해양 문명’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양 중심의 삶 속에서 발전한 다양한 신체 활동과 놀이 중, 가장 독특하고도 실용적인 경기로 꼽히는 것이 바로 ‘뽀로톤(Poroton)’이다. 뽀로톤은 오늘날의 수구나 럭비처럼 팀 단위로 진행되는 수중 경기이지만, 그 방식은 전적으로 전통적인 바다 환경과 생활 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원래는 바닷속에서 조개, 자갈, 물고기 등을 공동으로 채취하거나 옮기던 실용 작업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과정이 놀이로 발전하며 경기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이 경기는 단지 스포츠가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과 생존을 반영한 실천적 활동이자 놀이였다. 뽀로톤이라는 이름은 타히티어로 “물속에서 나르는 것” 또는 “공동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경기의 본질이 ‘혼자서가 아닌 함께 바닷속을 통과한다’는 철학을 잘 드러낸다. 뽀로톤 경기는 얕은 석호(라군)나 조용한 해변에서 진행되며, 고정된 코트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바닷속 지형을 활용한다. 따라서 경기장 자체가 매번 달라질 수 있고, 이는 참가자에게 즉흥적 판단력과 공간 적응력을 요구한다. 전통적으로 뽀로톤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돌, 나무 조각, 또는 코코넛 껍질로 만든 공 모양의 물체를 팀이 협력해 상대 진영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면 위에서가 아니라 수중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경기는 호흡 조절, 수중 이동 능력, 잠영 기술 등 높은 수준의 신체 능력을 요구한다. 또한, 팀원 간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공격이나 수비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동체 중심의 사고와 협력의 문화가 배어든 경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뽀로톤은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공통적으로 ‘공동체 수중 경기’라는 본질을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닌, 바다와의 조화, 협력의 미덕, 전통 기술의 계승을 포함하는 복합적 문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뽀로톤의 경기 방식과 전략적 요소
뽀로톤 경기는 기본적으로 5인에서 7인 정도의 팀이 구성되어 진행된다. 경기는 조용한 해변이나 얕은 라군(수심 1.5m~2.5m)에서 열리며, 해류나 파도가 세지 않은 날을 선택하여 경기의 안정성과 집중도를 높인다. 경기장은 양 팀 진영을 기준으로 가로 15~20미터, 세로 30미터 내외의 바닷속 영역으로 설정되며, 코트에는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해초 줄이나 대나무 깃발이 고정된다. 중심 도구는 보통 코코넛 껍질을 덧댄 ‘수중 공’이며, 내부에 약간의 돌을 넣어 자연스럽게 바닥에 가라앉도록 조절한다. 이 공은 물 위로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경기는 철저히 수중에서 이뤄진다. 양 팀은 경기를 시작할 때 수면 아래에서 출발하며, 스타트 신호와 함께 수중 공을 향해 잠수한 뒤 공을 차지하려 한다. 경기의 목표는 제한 시간 내에 공을 상대편 진영의 끝 지점(보통 ‘해초 골’이라 불리는 구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공은 손으로 들고 이동하거나, 가슴에 안은 채 잠영하며 움직일 수 있으며,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는 심판이 일시 중단을 선언하고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 이는 ‘수중 경기’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규칙이다. 공격 팀은 팀원 간 교차 잠영, 공 전수, 유인 전술 등을 활용해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려 하며, 수비 팀은 상대의 공 이동을 방해하고, 탈취를 시도하거나 잠수 시간을 조절해 피로도를 높인다. 특히 체력 분배와 호흡 조절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누가 더 오래 물속에 머물 수 있는가’가 경기의 승패에 큰 영향을 준다. 경기 중 심판은 수면 위에서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부정행위(공을 수면 위로 던지거나, 상대의 장비를 잡는 행위 등)에 대해 경고 또는 공 탈취 판정을 내린다. 전통적으로는 심판 역할을 마을의 장로나 어업에 능한 어른들이 수행하며, 이는 단순한 규칙 집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예의를 유지하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된다. 경기는 보통 두 세트제로 운영되며, 각 세트는 15분에서 20분 사이로 진행된다. 현대화된 일부 대회에서는 공에 RFID 태그를 부착하여 수중 이동 경로를 시각화하는 방식도 도입되고 있으나, 전통 방식에서는 여전히 ‘감각’과 ‘협력’을 중심으로 경기가 운영된다.
바닷속 공동체 정신, 뽀로톤이 남긴 것들
뽀로톤은 단순한 수중 스포츠를 넘어서,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공간이자 공존의 장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유대를 함께 길러내는 이 경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함의를 지닌다. 특히 바다 환경에 대한 이해와 존중, 자연 지형과의 공존, 팀워크를 중심으로 한 경기 구조는, 경쟁 위주의 현대 스포츠에 경종을 울리는 대안적 모델로 기능할 수 있다. 뽀로톤은 ‘승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함께 수중을 건너기 위한 수행’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팀원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고, 물속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도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또한 뽀로톤은 교육적 효과도 크다. 폴리네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 체육 시간이나 청소년 캠프에서 이 경기를 체험하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바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협업의 중요성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 대상 전통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으로도 주목받으며,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뽀로톤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끼는 ‘경기’라는 개념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경쟁과 기록이 아니라, 감각과 흐름, 협력과 직관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의 철학이자, 해양 공동체의 정신적 지층을 담은 문화이다. 결국 바다를 향한 폴리네시아인의 태도는, ‘정복’이 아니라 ‘동행’이었다. 뽀로톤은 그 정신을 가장 물리적으로, 가장 공동체적으로 구현한 상징이며, 우리가 잊고 있던 협력의 미덕, 자연과의 교감을 되새기게 하는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