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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가이 배 레이스: 필리핀 섬마을의 전통 수상 경주

by hongstorya 2025. 7. 30.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필리핀의 섬마을 공동체가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전통 수상 경기로, 목선(방카)을 타고 팀 단위로 경쟁하는 레이스다. 이 행사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지역 공동체 정신, 해양문화, 전통 조선술의 계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속 스포츠다.

파도 위를 가르며 전통을 계승하다: 바랑가이의 배 레이스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로, 섬마다 독특한 해양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필리핀 사람들에게 수상 활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삶의 일부이자 문화 자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전통 스포츠가 바로 ‘바랑가이 배 레이스(Barangay Boat Race)’다. 바랑가이는 필리핀의 가장 작은 행정 단위인 마을 단위를 의미하는데, 이 경기는 그 마을 단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열리는 전통 수상 경기다.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보통 성인을 위한 지역 축제 또는 성인의 날, 어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 등의 맥락에서 개최된다. 바다와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단순한 경기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협력, 기원, 즐거움이 응축된 행사로 간주된다. 필리핀 전통 목선인 ‘방카(Bangka)’는 대나무 아웃리거가 부착된 가벼운 배로, 속도보다는 균형과 조작 기술이 중요하다. 경기에 출전하는 팀은 보통 4~6명으로 구성되며, 노를 젓는 패들링 방식으로 바다 위를 질주한다. 때로는 1인용 소형 방카 레이스도 진행되지만, 전통적인 방식은 팀이 호흡을 맞춰 함께 노를 젓는 형식이다. 경로는 해안가에서 출발하여 특정 부표를 돌아 다시 해안선으로 복귀하는 왕복 방식이 많고, 해류와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경주로 분류된다. 바랑가이 배 레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 중심의 운영이다. 참가팀은 같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되며, 배의 제작, 훈련, 전략 수립 등 모든 과정에 마을 주민들이 관여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배 제작까지 직접 이루어지며, 조부모 세대가 배를 만들고 손자들이 그 배를 타고 레이스에 참가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한 스포츠적 의미를 넘어, 필리핀의 해양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의 집약체로 기능하고 있다. 마을마다 보유한 전통 항해술, 바다의 흐름을 읽는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노를 젓는 협동심은 바랑가이 배 레이스가 단순한 경기를 넘어 ‘살아있는 문화’로 존중받게 만든다.

 

레이스의 구조, 규칙, 전통적 요소의 결합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기본적으로 노를 이용한 패들링 경주로 진행된다. 배의 종류는 전통 목선인 방카가 사용되며, 전통성을 강조하는 지역에서는 엔진 사용이 금지되고, 나무 노만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방카는 길이 약 4~8미터, 무게는 50~150kg에 이르며, 선체 양 옆에는 아웃리거가 부착되어 파도 위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경기 구간은 해안선에서 출발하여 약 300500미터 해상의 부표를 돌아 복귀하는 코스로 구성되며, 평균 경기 시간은 510분 이내다. 단거리 스프린트 형식과 장거리 왕복형 경기가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장애물 코스를 배치하거나, 배에 깃발을 꽂아 결승선 통과 시 깃발을 가장 먼저 세운 팀이 승리하는 형식도 존재한다. 참가자는 팀워크가 핵심이다. 보통 4~6명이 배의 앞, 중간, 뒤에 나뉘어 앉아 리듬을 맞춰 노를 젓는다. 구령자는 앞 또는 중간에 위치하여 “Pusó! Pusó!”(마음을 모아!) 등의掛聲으로 팀원들의 동기와 리듬을 조절한다. 실제로 이掛聲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필리핀 전통 노젓기에서 중요한 의사소통 도구로, 조상의 바다 항해 유산의 흔적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바랑가이 배 레이스에서는 배 자체도 경쟁 요소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기 당일 새로 제작된 방카로만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전통 조선술을 보존하고 있다. 나무 재질, 아웃리거 구조, 방수처리 방식까지 심사 기준이 존재하며, 가장 아름다운 배에 ‘전통선 상’이 수여된다. 이외에도 참가자 복장 역시 전통 복식을 장려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전통 허리띠인 ‘바하그(Bahag)’를 두르거나, 바랑가이 고유 문양이 수놓인 셔츠를 입는다. 여성 응원단은 전통 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물에 뛰어드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이는 축제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완주’다. 이기기 위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함께 바다를 가르고 완주하는 것 자체가 공동체의 연대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경기 도중 노가 부러졌거나, 방향을 잃었을 때도 마을 주민들이 서로 도와 경기를 완주하도록 유도하며, 응원 역시 승패와 관계없이 열띠게 이뤄진다.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필리핀 해양 문화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며, 오늘날에도 섬 주민들의 정체성과 긍지를 보여주는 주요 행사의 하나다. 이 경기를 통해 어린 세대는 조상의 삶을 이해하고, 외부 관광객은 필리핀의 진정한 바다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노를 함께 젓는다는 것: 바다와 함께한 민속의 기억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파도를 넘는 과정이며, 협력과 전통, 그리고 세대 간의 연결을 상징하는 축제다. 노를 함께 젓는 순간, 사람들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서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바다를 이해하고, 땀과 물방울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된다. 이 전통은 필리핀의 정체성 그 자체다. 바다에 의존해 살아온 섬나라의 역사, 어업과 항해의 문화, 그리고 공동체 중심의 삶이 이 레이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경기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함께함’의 경험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문화적 유산을 공유한다. 오늘날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국제 민속 체험 행사나 관광 이벤트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해양 생태 보호와 연계된 행사로 발전하면서, 바다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배우는 교육적 의미까지 더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통 조선술 워크숍, 노젓기 교육, 그리고 생존 수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바랑가이 배 레이스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그 전통성과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필리핀 사람들만의 자산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살아간다’는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노를 젓는 팔의 힘보다 중요한 것은, 그 팔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다. 오늘도 어딘가의 섬마을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함께 물살을 가르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