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쿨은 브루나이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 활쏘기 경기로, 정밀함과 집중력, 침착한 사격 자세가 요구되는 민속 스포츠다. 대나무와 야자수 잎으로 만든 활과 화살을 이용하며, 의례와 축제의 일부로 진행되는 이 경기는 브루나이의 자연과 전통을 하나로 잇는 문화 유산이다.
정글의 침묵 속에서 화살을 쏘다: 낭쿨의 기원과 전통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북서부에 위치한 숲과 강의 나라이다. 밀림 속에 사는 다양한 민족과 부족들이 저마다의 전통과 삶의 방식을 간직해 왔으며, 이 중에서도 활쏘기는 중요한 생존 기술이자 공동체 의식의 일부였다. ‘낭쿨(Nangkul)’은 그러한 활쏘기 전통이 발전하여 의례와 스포츠의 형태를 띤 전통 경기로, 브루나이의 숲과 문화를 상징하는 민속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낭쿨’이라는 단어는 현지 말레이어로 “날카롭게 찌르다” 또는 “적을 명중시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한 활쏘기 기술을 넘어, 숲속에서 사냥을 하며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원시적 감각과 민첩함,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낭쿨은 브루나이의 다야크(Dayak)족, 이반(Iban)족 등의 부족들 사이에서 세대를 이어 전해졌으며, 사냥뿐만 아니라 마을 간 명예 대결, 축제의 일부, 통과의례로도 활용되었다. 경기는 보통 마을의 공터나 숲의 가장자리에 설치된 과녁 앞에서 진행되며,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활과 화살을 사용한다. 활은 주로 대나무와 라탄, 화살촉은 나무나 동물 뼈를 깎아 만들며, 화살 끝에는 마름모형의 조각이 달려 정밀한 궤적을 그린다. 이는 단순히 화살을 쏘는 것 이상으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반영한 도구다. 오늘날에도 브루나이 일부 지역에서는 낭쿨 대회가 마을 축제에서 열리며, 전통 의상과 음악, 음식이 함께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현대식 스포츠 경기와는 달리, 낭쿨은 더디지만 정적이고 집중적인 감각을 요구하며, 참가자들은 이 경기에서 ‘숨죽이는 사격’의 미학을 경험하게 된다.
낭쿨 경기 방식, 장비, 절차와 공동체 속 의미
낭쿨은 브루나이의 열대 밀림과 자연을 배경으로 형성된 활쏘기 경기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정체성과 생존 감각을 계승하는 문화행위다. 이 경기는 정교한 규칙과 엄격한 자세, 자연 소재의 도구 사용으로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다.
1. 장비의 전통성과 특징 활(Bulat Nangkul): 대나무를 굽혀서 만든 활로, 줄은 코코넛 섬유나 야자수 껍질을 꼬아 만든다. 활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1.5m 이상이며, 개인의 키에 맞게 제작된다. 화살(Panah): 화살대는 가는 대나무를 사용하고, 화살촉은 나무 또는 정제되지 않은 철 조각, 동물 뼈로 만들어진다. 날카롭되 치명적이지 않도록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과녁(Target Batu): 원형 나무판 또는 바나나 줄기 덩어리를 사용하며, 중심부에 색깔을 입혀 명중 여부를 판단한다.
2. 경기 규칙과 진행 방식 참가자들은 10m, 15m, 20m 거리에서 각각 세 발씩 총 9발의 화살을 쏘며, 누적 점수로 순위를 결정한다. 명중 부위에 따라 1점(외곽), 3점(중간), 5점(중앙)으로 점수가 배분된다. 활을 쏘는 자세는 ‘정적 자세’를 고수해야 하며, 한 번의 조준에 10초 이상 집중할 수 없다. 이는 ‘한 순간의 집중’에 가치를 두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화살을 줍는 행위나 경기장 이동 시에도 전통 복장과 예절을 지켜야 한다.
3. 의례와 공동체의 참여 경기 전에는 참가자들이 승려나 마을 원로로부터 축복을 받고, 대나무 피리를 불며 산신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참가자들이 마을에서 가져온 작은 나뭇가지를 과녁 옆에 두어, ‘자신의 마음을 명중시키라’는 상징으로 삼기도 한다.
4. 여성과 아이들의 참여 과거에는 남성 전유물이었지만, 현재는 여성과 어린이도 별도의 카테고리에서 참여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낭쿨은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전승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5. 관광과 교육 콘텐츠로의 발전 브루나이 문화청에서는 낭쿨을 국가 전통유산으로 지정하고, 박물관 및 학교 체험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스포츠를 넘어 민족 정체성과 문화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낭쿨은 단순한 점수 경쟁을 넘어서, 고요함 속에서의 정적 긴장감, 자연과 일체화된 감각,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숨을 고르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낭쿨, 숲과 사람 사이를 잇는 화살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빠르고 자극적인 스포츠가 주류를 이루지만, 낭쿨은 그 흐름을 거스르며 고요한 집중과 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이 경기는 단순히 활을 쏘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자신과 마주하는 고요한 수련의 시간이다. 브루나이 정부와 지역 공동체는 낭쿨을 문화 유산으로 보호하며, 이를 통해 브루나이의 전통을 내외부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동시에 낭쿨은 ‘소통과 존중’이라는 원시적 가치와, ‘세대 간 전승’이라는 현대적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민속 콘텐츠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집중력과 내면의 평화가 중요시되면서, 낭쿨은 명상 스포츠 혹은 슬로우 스포츠로도 주목받고 있다. 브루나이 내외에서 체험 캠프나 전통 스포츠 워크숍 등을 통해 이 고요한 활쏘기 문화를 접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활쏘기를 단순한 기능이 아닌 ‘정신적 도전’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숲은 말이 없다. 그러나 화살은 그것을 꿰뚫는다. 낭쿨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이 침묵 속에서 나누는 대화이자,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전통의 메아리다. 이 작은 나라의 밀림 속에서 시작된 낭쿨은 이제 전 세계에 ‘정적인 스포츠의 미학’을 알려주는 메신저가 되어가고 있다.